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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일본, 대만의 토지개혁을 정리해 봄

 

 

1.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 아시아 지역 여러나라에서 토지개혁이 진행됨.

2. 일본은 미국에서 패망한 후, 미군정이 실시되면서 토지개혁이 진행됨.

3. 미군정은 1 헥타르(가로 100미터 * 세로100미터)가 넘는 토지를 소유한 지주들을 유상몰수 대상으로 설정하고 매수해서 일본 전국의 260만 헥타르의 농지중 92만 헥타르를 자작지로 확보한 후 소작농에게 유상으로 분배를 함.

 

4.그당시 농부중 70%가 소작농이었는데, 1949년이 되자 소작농 비율이 45%로 떨어져서 절반이상이 자작농이 되게 됨.

5. 대만은 중국 공산당에게 패하고 대만으로 들어온 국민당정부가 토지개혁을 실시했음.

6. 국민당정부는 일정 규모 이상의 토지(논 3 헥타르 or 밭 6 헥타르)를 보유한 지주들에게 농지를 매각토록 하고,매각 대금의 70%는 토지증권으로, 30%는 정부가 소유한 공장의 주식으로 지불을 한 후, 소작농에게 유상 분배를 함.

7. 대만의 토지개혁은 점령군 같이 행세해서 국민당에 좋지 않았던 민심을 긍정적으로 돌려놓는데 성공하며 국민당 장기 집권의 발판이 됨.

 

8. 한국은 일본이 항복한 후 일본과 마찬가지로 미군정이 실시 됨.

9. 한국에 들어온 미군은 한국 내 일본 재산을 몰수해서 미 군정 산하 신한공사로 이관한 후, 그 땅을 경작하던 소작농들에게 할부로 매도함.

10. 일본의 경우 40년치 소작료를 내야 그 토지가 소작농 땅이 되는 조건이었는데, 한국은 매년 생산량의 20%를 15년간 정부에 내면 자기 땅이 되는 조건이라 훨씬 조건이 좋았음.

 

 

11. 조선 말기의 소작료는 지주와 소작농이 추수한 곡식을 반씩 가져가는 게 보통이었음.

12. 여기에 씨앗 값, 소를 지주에게 빌린 값 등이 더해져서 생산량의 70% 정도를 소작료로 지주에게 주고, 남는 부분으로 소작농들은 겨우 굶어죽지 않는 수준의 생활을 함

13. 이렇게 소작료로 70%를 내던 소작농에게, 20%만 내면 되고, 그것도 15년만 잘 내면 내 땅이 되는 미 군정의 조건은 대박이었음.

 

14. 일본인 소유 땅들이 소작농에게 불하되며, 전체 농민의 24% 정도가 자기 땅을 가진 자영농이 되었고. 미 군정 이미지도 좋아짐

15. 미 군정에서 이 일을 추진한 사람은 울프 라데진스키 라는 소련에서 공산당을 피해 미국으로 망명한 사람이었음

16. 레닌과 스탈린이 이끄는 소련 공산당이 적은 쪽수로 소련을 먹은 데에는 소련 농노들의 지원이 결정적이었음.

17. 공산당이 점령한 토지마다 지주에게 농지를 무상몰수해서 농민들에게 무상분배를 하며 농민들을 한 편으로 만듦. 농민들이 공산당을 지원하니 병력 보충과 식량보급이 쉽게 이뤄지며 승승장구함.

 

 

18. 1940년대 한국도 지주들의 무지막지한 소작료로 소작농들은 굶어죽지 않는 정도로 살아가고 있어 공산주의가 크기 쉬운 토양이었음.

19. 미 군정은 공산주의를 막는 방안으로 우선 일본 소유 토지를 소작농에게 나눠주는 농지 개혁을 한 것임.

20. 일본인 소유 토지는 소작농에게 분배가 되었지만, 아직 한국 지주 소유의 토지들이 남아 있었음

 

21. 한국 대통령에 오른 이승만은 파격적인 인사를 함

22. 농림부 장관에 공산주의자에서 전향한 조봉암을 발탁한 것임.

23. 이승만의 강력한 반대파가 파격적으로 발탁이 된 것임.

 

24. 조봉암은 장관이 되자마자 평소 소신이던 농지개혁을 강하게 진행함.

25. 소유주가 직접 경작하지 않는 9천 평 이상 토지는 전부 유상몰수해서 소작농들에게 연 30%로 5년만 납입하면 자기 땅이 되게 분배를 함. 미 군정보다 더 파격적인 조건이었음

26. 이승만은 조봉암을 말리는 척하면서도, 4개월이라는 짧은 시간 내 토지개혁을 해치워버리는 것을 배후에서 지원함.

 

 

27. 1949년 6월 23일 국회 본회의에 농지개혁법이 통과됨.

28. 농지개혁으로 저가에 재산을 몰수당하는 지주들에게는 적산 공장 불하 등 국가사업에 우선 참여권을 줘서 지주 자산이 산업 자산으로 전환될 수 있도록 함.

29. 남한 토지 대부분은 자기 땅을 가지고 경작하는 자영농들 차지가 됨.

 

30. 토지개혁을 하자마자 6.25 가 터짐

31. 공산당이 내려와 이승만 정권의 토지개혁을 무효로 하고, 지주 땅을 무상몰수해서 농민들에게 무상분배를 한다고 발표를 함.

32. 외견상 이승만 정부는 유상분배지만 공산당은 무상분배라 소작농 입장에서 좋아 보임.

33. 그런데 공산당의 무상분배에는 문제가 있었음

 

 

34. 공산당은 농민들에게 무상분배한 토지 산출물의 27%를 세금으로 내게 하고, 애국미니 뭐니 하면서 추가로 더 가져가 50% 정도까지 공산당이 떼 가버림.

35. 이보다 더 결정적인 것은 무상분배 받은 토지는 내 땅이 아니라 공산당 소유 땅인 것이었음

36. 농민들 입장에서 공산당의 무상배분은 뭐 같은 제도로 보이게 됨.

37. 6.25직전에 실시된 토지개혁은 한국 농민들이 6.25기간 중 공산당에 호응하지 않은 신의 한 수가 됨

38. 6.25가 끝난 후 농지를 받은 농민들은 과거보다 남는 재산 여력을 자식 교육으로 돌림

 

39. 30대가 장관이 되던 시절이라 옆집 똘똘한 자식이 대학을 졸업하자 군수로 내려오는 개천에 용 나는 상황이 도처에서 벌어지는 것에 열광을 함.

40. 부동산보다 훨씬 좋은 투자가 자식 교육이 된 것임

41. 이런 농민들의 교육열로 대량 공급된 교육받은 젊은이들이 한강의 기적 기초가 됨

 

42. 그 당시 토지개혁이 성공적으로 실시된 나라는 아시아에서 한국, 일본, 대만이었음.

43. 북한과 중국의 무상몰수,무상분배는 시작은 좋았지만 무상 분배한 토지가 개인 소유가 아니라 국가 소유가 되어 인간의 소유욕을 자극하지 못했음.

 

44. 필리핀, 인도네시아 등 자원이 많아 훨씬 성장에 용이했던 아시아 다른 나라를 제치고 3국이 급속 성장한 이유 중 하나가 토지개혁의 성공이었고, 남미나 인도가 제대로 성장하지 못한 이유도 토지개혁에 실패해서 지주들을 정리하지 못한 이유가 큼

 

디시 고닉 메르임 글

 

 

이승만이 토지개혁 안 했으면 박헌영 말처럼 전쟁 중 민중봉기 일어났다

이승만이 공화주의자라서 가능했던 것이고 이승만의 토지개혁을 극렬히 반대했던게 당시 친일파지주 집단인 한민당(민주당) ㅋ

저 조봉암과 이승만의 농지개혁을 결사 반대하려고 친일지주들이 궐기해서 창당한 당이 한국민주당 지금의 더불어민주당임 ㅋㅋㅋㅋㅋ

 

지금도 착취형 임대사업자 조지는건 좌우불문 권장되는일인데

 

토지개혁으로 자영농 육성하는게 국가 발전에 조오오오온나 중요한 듯. 실제로 브라질, 아르헨티나 같은 중남미나 필리핀이 망한것도 중앙정부가 지방 토호를 갈아내서 토지개혁 못한게 크다고 생각함

이제 동남아나 인도 같은곳의 지주들은 정치권력 그자체가 되어서 토지개혁을 할래야 할수가 없음 이 나라들 미래가 암울한 이유가 바로 이거임

 

이게 ㅈㄴ웃긴게 토지나눠받은 농민들이 농사지은걸로 기존 땅주인들에게 땅값을 지불하는거였는데 6.25때문에 땅만 뺏기고 끝남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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