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라오가 공개적으로 자위행위를 했다고 하는 이야기는 가짜뉴스라는 이집트 고고학자 곽민수
파라오가 공개적으로 자위행위를 했다고요?
* 상당히 긴 포스팅입니다. 그렇지만 한번 쯤은 찬찬히 읽어봐주시기를 바라고, 또 포스팅의 내용을 최대한 널리 알려주셨으면 합니다.
인터넷에서는 파라오가 대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자위행위를 하는 의식을 치뤘다는 이야기를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구글에서 '파라오'와 '자위'라는 키워드로 간단하게 검색만 해봐도 10만 개가 훌쩍 넘는 문서들이 검색되는 정도죠. 그리고 이 담론은 계속해서 재생산이 되는데, 종종 다시금 수면 위로 떠올라서 일각에서 화제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다보니 가끔 지인들이 저에게 관련 링크를 보내면서 이 이야기가 사실이냐고 묻는 경우도 생깁니다. 현재까지 20차례도 넘게 그 일을 경험했습니다.
일단 결론부터 말씀드리죠.
파라오가 공개적으로 자위행위를 하는 의례가 있었다는 저 이야기는 '전형적인 가짜뉴스'입니다. 요컨대, 근거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추정이 이뤄지고, 그런 추정에 자극성이 더해져서 계속적으로 여기저기서 다뤄지게 되고, 그러면서 그 이야기를 담고 있는 문서들이 서로 인용되고 참조 되다보니, 결국에는 그 이야기가 사실관계가 확인된 역사적 사실인 것처럼 굳어져버린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이 이야기의 근원을 따라 올라가다보면 그 출처가 영어권의 문서들이다 보니 한국 내에서는 그 자체로 이야기의 공신력이 더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사실 좀 귀찮아서 이것과 관련된 이야기를 미루고 또 미뤘었는데, 이제는 이 가짜뉴스의 재생산을, 적어도 한국에서 만큼 '끝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포스팅을 씁니다. 그런 만큼, 이례적으로 이 포스팅의 내용을 여러분들 모두가 최대한 널리 알려달라고 부탁을 좀 드려봅니다.
자, 그럼 먼저 어떤 내용의 이야기가 유통되고 있는지를 살펴보죠. 유통되는 이야기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나일강이 범람하면 파라오는 수천명의 군중이 보는 앞에서 자위행위를 했다.
2. 자위 의례가 벌어진 것은 '민' 신을 위한 축제 때였다.
3. 나일강은 범람하면 3개월 정도 그 상태를 유지하는데, 그때 강의 여신 네프티스를 달래기 위해서 자위행위 의례가 필요했다.
4. 자위행위는 왕족만 할 수 있는 행위였다. 평민들은 자위행위를 하다가 적발되면 처벌을 받았다.
5. 파라오의 자위행위 의식 때 참여한 군중들 가운데 남자들은 모두 다 파라오와 함께 자위행위를 했다.
6. 이집트의 파라오들이 단명한 것은 오래도록 지속적으로 자위행위를 했기 때문이다.
일단 1, 2 번과 관련한 구체적인 근거는 현재까지 전혀 확인되지 않았습니다. 항상 발기한 남성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민' 신은 이집트에서 매우 중요한 신이었고, 이 신을 위한 축제 의례도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재까지 확보된 자료를 근거로 할 때, '공개 자위행위' 같은 의식이 '민 축제' 때 있었다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민 축제'는, 람세스 3세의 메디넷 하부 신전 기록에 따르면 쉐무의 첫번째 달 11일에 대략 4일 동안 열렸던 것으로 보이는데, 이 시기는 오늘날의 달력으로는 대략 5월 초-중순 정도로 나일강이 범람하는 시기와 시간적으로 좀 거리가 있기도 합니다.
나일강은 매년 거의 비슷한 시기에 거의 같은 정도로 홍수가 일어났습니다. 이 홍수가 이집트 문명의 갖고 있던 굉장한 생산력의 근간이 되었고요. 고대 이집트인들은 이 홍수의 시점을 비교적 정확하게 예측할 수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나일강은 유량 변동의 리듬이 꽤내 규칙적인 강이이기도 했고요, 이집트인들은 천문 관측 (현재의 시점에 대해서 파악)과 나일강의 수위 측정(물이 늘어나는 정도와 속도)을 통해서 홍수가 나는 타이밍에 대한 예측이 가능했던 겁니다. 실제로 나일강 곳곳에는 수위계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그 가운데는 현재에도 직접 보실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엘레판티네 섬에 있는 크눔 신전에 설치된 수위계와 에드푸의 호루스 신전에 설치된 수위계 등이 대표적인 수위계 유적입니다.
3번의 경우에는 사실관계 자체가 틀렸습니다. 오시리스, 세트, 이시스의 동생인 네프티스는 나일강과 관련이 있는 여신이 아닙니다. 이 여신은 일반적으로 비애, 슬픔 등과 관계가 있다고 여겨집니다. 그런데 네프티스를 달래기 위해서 나일강에다가 자위를 한다고요?
4번 역시 전혀 근거가 없습니다. 고대 이집트에서 '자위행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는 텍스트들은 종교 문헌들입니다. 그러나 자위행위가 실제로 민간에서 어떤 식으로 여겨졌었고, 실제로 어떤 식으로 행해졌는지를 알해주는 자료는 적어도 제가 아는 범주 내에서는 현재까지 확인된 적이 없습니다.
창조 과정을 묘사한 텍스트들 가운데, 창조주인 아툼(혹은 라) 신이 자위행위를 통해서 다음 세대의 신인 슈와 테프누트를 낳았다고 설명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집트에는 '신의 손'이라는 신관 직책명이 있었는데, 대체로 카르나크 신전의 고위 여성 신관들에게 주어진 것입니다. 이 역시 넌지시 고대 이집트에서는 '수음'이 신화적으로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는 걸 보여줍니다. '파라오 자위행위 의례'에 관한 가짜뉴스는 바로 이 신화적 배경을 가지고 누군가가 멋대로 상상의 나래를 펼친 내용이 근거 없는 공신력을 갖게 됨으로 탄생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생명력이 긴 가짜뉴스들은 부정확한 근거, 부정확한 논리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재생산이 반복되다보면 결국 내적 모순이 생긴다는 특성도 갖고 있습니다. 거기에 계속해서 자극적인 이야기가 덧붙여지는 경우도 많은데, 5번 항목 또한 그런 예의 하나라고 볼 수 있을 듯 합니다. 물론 6번 항목도 마찬가지입니다. 자극성이 인위적으로 강조된 담론일 뿐더러, 애초부터 비과학적인 이야기죠. 자위를 많이해서 일찍 죽었다뇨?
더불어서 '파라오는 단명했다'라는 명제 자체도 완전히 틀렸습니다. 이를테면, 고왕국 6왕조 시대의 페피 2세는 100세까지, 중왕국의 시조인 멘투호테프 2세도 대략 70세까지, 유명 파라오인 람세스 2세는 90세까지 살았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고대 이집트 당대의 기준으로는 물론이고 현대의 기준으로도 장수입니다. 요컨대, '장수한 파라오도 꽤 있었다'는 이야기죠. 물론 단명한 파라오도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가 투탕카멘입니다. 그는 20세도 되기 전에 사망했습니다. '파라오는 단명했다'는 명제는 현대인들에게는 가장 유명한 파라오인 투탕카멘의 사례만을 염두에 두고 누군가에 의해서 만들어진 뇌피셜이라고 생각됩니다.
이 가짜뉴스의 근원이 정확히 어디인지는 잘 모르겠숩니다. 다만, 제가 추적한 바로는 2005년에 출간된 Jonathan Margolis라는 사람의 <O: The Intimate History of the Orgasm>라는 책이 가짜뉴스의 원류 가운데 하나인 것으로 보입니다.
이 책에 보면 이런 대목이 나옵니다.
"One of the Pharaohs’ most onerous ceremonial duties in Egypt was to bring fertility to the Nile by masturbating annually into its waters. The tradition supposedly went back to a primary event in the various versions of the creation myth of the time, although if you think about it, the creation myth must have been invented as a post-rationalisation of the Nile masturbating ceremony."
해석하면 대략 이런 내용입니다.
"파라오들의 중요한 의례적 의무 가운데 하나는 매년 강물에다가 자위행위를 하는 것으로 나일강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이었다. 이 전통은 다양한 창조신화에서 이야기하는 최초의 사건까지 거슬러 올라갈 것으로 여겨진다. 물론 나일강에서의 자위행위 의식에 대한 사후 합리화를 통해서 이 창조 신화가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꽤나 단정적으로 말하고 있지만, 저자는 자신의 판단과 관련이 있는 구체적인 역사적 사례나 구체적인 근거에 대해서 결국 언급하지 않습니다. 이 자체로도 이 내용이 전형적인 가짜뉴스라고 짐작할 수 있게 되죠.
놀랍게도 이 저자는 영국의 유명 언론 Daily Telegraph의 기자 출신입니다. 그런데 기자의 말이 가짜뉴스의 근원이 되는 경우는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기자들은 대체로 학문적으로 훈련을 받지는 않은 '전문가'이기 때문에, 또 그 직업의 특성상 자신의 직관과 정념을 '사실적 판단'으로 착각하게 되는 경우가 많을 수밖에 없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렇지만 기자가 갖고 있는 사회적 권위는 굉장한 것이어서, 기자가 뭔가 말하면 그 내용은 자동적으로 공신력이 생기는 경우가 많죠. 그래서 기자들의 주장은 다소 근거가 빈약하더라도 빠른 속도로 널리 펄져나가 '사회적 담론'으로 쉽게 자리를 잡습니다. 이런 경우의 또 다른 대표적인 사례가 '사이비고고학의 대가'인 그레이엄 핸콕인데, 그는 인디펜던트와 가디언 같은 세계 최고의 권위를 자랑하는 언론사의 기자 출신입니다.
그리고 이 내용은 한국에서도 '책을 통해서' 재생산되기도 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오후'라는 필명을 쓰는 작가의 <가장 공적인 연애사>라는 책입니다.
이 책의 목차 가운데는 2장에 '공개 자위에 시달린 이집트 왕'이라는 제목이 붙여진 부분이 있습니다. 제가 첨부한 사진은 바로 그 장에 들어가 있는 사진입니다. 이 사진에서는 '발기된 남성'이 마치 파라오인 것처럼 써놓았는데, 사실 발기된 왼쪽 사람은 '민' 신이고, 오른쪽이 파라오입니다. 파라오가 '민'에게 제물을 바치고 있는 장면이죠.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로 저자가 사진을 자의적으로 해석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고대 이집트를 이야기하는 부분은 현재 한국에서 유통되고 있는 '고대 이집트의 성문화에 관한 부정확한 담론들의 총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그냥 그 부분 거의 전체가 다 '완전한 가짜뉴스'라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이 책의 저자인 '오후' 작가는 꽤 화제가 되었던 <믿습니까? 믿습니다! - 별자리부터 가짜 뉴스까지 인류와 함께해온 미신의 역사>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합니다. <믿습니까? .....>에서 저자는 근거 없이 무엇인가를 신뢰하는 대중적 습관에 대해 비판적으로 이야기했는데, 그런 저자가 자신의 다른 책인 <가장 공적인 연애사>을 통해서는 몰이해와 오해, 그리고 무지와 무책임으로 똘똘 뭉쳐진 가짜뉴스의 주요한 생산자가 된 것이죠. 비극적인 일입니다.
사실 <가장 공적인 연애사>에 대해서는 조금 더 심하게 표현을 하고 싶었지만, 여기서는 너무 심한 표현은 삼가고 그 심한 표현은 나중에 저를 직접 만나면 들려드리죠. 크크크,
아무튼, 오랫만에 매우 길게 포스팅을 썼습니다만, 많이들 읽어주셨으면 좋겠고, 또 이 내용을 최대란 널리 퍼뜨려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가짜뉴스는 만들어내기는 매우 쉽지만, 그것을 담론의 장에서 퇴출시키는 작업은 너무나도 어렵습니다. 모두가 힘을 합쳐야 가능해지는 작업입니다. 다함께 한번 해보죠!
이집트 고고학자 곽민수 페이스북의 글
이 사람이 게임야화 나왔던 그 이집트 전문가
고대 이집트 성관련 찌라시는 이거말고도 대표적인게 클레오파트라가 전동딜도의 시초를 만들었다! 면서 파피루스와 벌을존나 집어넣어서 진동자위를 했다는 썰인데 이거도 ㅆ구라임 역사적 증거는 하나도 없고 미국 찌라시를 성관련 만화에서 썰푸는 와중에 확대됨
아무래도 이집트 옛날 신화랑 자위가 깊은 연관이 있어서 자꾸 나오는듯
먼 미래에는 동방의 어느 나라에 집권자가 트위터에 야동을 올린게 주작인지 아닌지 논란이겠네
사람이 항상 의심하고 비판하는 태도를 가지는 데에는 이유가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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