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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거지론 이해하기: 무게추가 뒤바뀌다

 

 

설거지론은 아직까지 가부장제와 포스트-가부장제의 과도기적 상황에 있는 한국의 맥락에서 해석해야함.

 

가부장제에서 남성은 여성과 자식들을 부양하는 가장의 역할을 맡으면서 권위를 인정받는 대신 상당한 대가를 지불해야 했음. 부양 의무, '남성성'을 유지할 것, 국방의 의무 등...

 

물론 이것도 교환이 성립하니까 유지되었던 건데, 여성은 사회적 위계에서 아랫자리에 들어가고, 정조의 의무를 지는 대신 남성이 부양의무를 지는 구조였음. 양쪽 다 희생하는 것이 존재했고 실제로 누가 더 큰 책임을 지는지는 상황마다, 시대마다 다르게 해석했음.

 

전통적인 사고관에서는 이게 '공평' 한거였고, 주류 여성주의는 가부장제가 여성에게 일방적인 손해라고 주장했으며, 21세기 대한민국에서는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의 물결이 가부장제를 사실상 허물어트리는 수준에 이르렀음.

 

 

문제는 이 교환구조에서 남성의 부양의무는 '그 재앙'의 부동산 정책 때문에 갑자기 폭발적으로 무거워졌는데 여성이 지는 다른 의무들은 거의 사라지다시피 했다는 데 있음.

 

만약 여자에게 가사노동에 대해 전적인 책임을 요구하면 설령 외벌이라도 개 썅놈으로 매도당하고, 실제로 어느정도 가부장적인 사고를 가진 샤붕이들이라도 주변에서 "내가 외벌이(혹은 그에 준하는 소득차이)하는데 왜 가사노동을 도와야 하냐?" 라고 묻는 사람이 있으면 아마 '저 새낀 뭐지?' 라고 생각할거임.

 

그리고 '정조의무' 역시도 사실상 형해화 됐음. 처녀 찾는 남자를 븅쉰으로 보는 것처럼. 이 부분에 있어서 여성들은 물론 나 혼자 야스했냐, 남자들도 똑같이 해놓고 왜 여자들에게? 라고 하겠지만, 상위 10~20% 남자들이 대부분의 여자를 독식했으니 사실상 의미 없는 반론이라는것만 알아두시길.

 

결론적으로 남자들이 보기엔 가부장적 권위와 정조의무 등은 사라졌는데 부양의무는 여전하고, 그 불만을 자극적이고 단순한 언어인 <설거지> 와 결합시켜 히트시킨 게 설거지론이라고 보면 될 거임.

 

그렇다면 이전 시대에는 이런게 없었느냐? 하면 아예 없진 않았음.

 

하지만 그땐 '사랑' 이라는 접착제가 존재했다고 나는 생각함. 본질적으로 결혼관계가 의무와 의무의 교환일 수는 있지만, 이게 대체적으로 정량적일지언정 항상 쌍방이 지는 의무의 크기가 동일하지 않았음. 그런데도 이 시스템이 유지되었던 건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의 본질인 희생을 서로가 했기 때문이고, 좀 더 유물론적으로 말하면 설거지론으로 되돌아올 수 있음.

 

러프하게 비유하면, 부부 간의 저울이 있다고 할 때, 남성이든 여성이든 의무의 저울이 한 쪽으로 기울어질 수 있음. 이때 일차적으로 저울이 조금 기울어지는 걸 홀드해주는 건 <사랑> 이라는 이름의 양자간의 희생임.

 

그 다음 남자쪽으로 기울어지는 걸 막는 핵심 저울추는(고리타분한 건 별론으로 하고) 바로 여성의 순결-남성의 책임이라고 생각함. 옛 시대에는 '내가 이 여자의 결혼시장에서 가치를 확 떨어트렸으니 내가 책임져야 한다' 가 너무 당연한 진리였고, 지금도 남자들은 어느 정도 공감할 것임.

 

그런데 설거지론에서 전제 1) 여성이 남자를 사랑하지 않고(=희생할 생각 없이) 조건으로 만났다. 2) 여성에 대한 책임을 남성이 딱히 질 이유가 없다, '니가 결혼시장에서 가치가 낮아진 걸 내가 수용할 필요가 없다' 가 들어오면 저울이 확 기울어짐.

 

사랑은 여자쪽도 없으니 남자가 희생할 필요가 없고, 심지어 자기를 위해 희생할 걸 요구하기까지 함. 남자나 '자녀를 위해' 희생할 생각은 아무리 봐도 우리 세대 전체(남녀불문) 없어보임.

 

그럼... 왜 부양의무라는 무거운 굴레를 져야 할까? 에 대한 자극적인 지적이 바로 설거지론이 되는것임.

 

 

남성들의 공포는 당장 맞벌이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여자가 결혼하고 일 그만두며 내 부양의무(=희생의 크기) 는 배가시키는 데 본인들은 희생하지 않는, 예컨대... 가사를 떠넘기고 자녀육아에는 소홀하며, 애초에 정조의무(이것도 희생의 일종임. 순간의 쾌락을 미래를 위해 포기했단 거니까) 조차 제대로 지키지 않았던 상황을 두려워하는것임.

 

저울은 기울어지는데 그걸 박차고 나갈수는 없고(사회적 시선과 자녀때문에)

 

여자들이 억울할 수도 있겠지만, 뭐, 성범죄/폭력 등 강력범죄 피해를 당할 확률보다 일 그만둘 확률이 더 크니까 본인이 평소에 저런걸 두려워했다면 그냥 입 닫고 ㄹㅇㅋㅋ만 치면 됨 ㅋㅋ

 

 

cf) 애초에 장기연애해서 결혼한 커플들은 해당사항 아님.

 

-장기연애 자체가 일방적인 희생으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고 서로 밀고 당기고 양보하고 양보 받으면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한쪽만 희생한다는 설거지론과는 거리가 있음. 그런데 이게 그렇게 흔한가? 우리학교 150명 동기 중 오랫동안 연애해서 결혼까지 한 커플은 3명 정도 있음(동기CC만 세지 않고 외부인과 사귄거 모두 포함)

 

cf2) 여성의 능력 자체는 생각보다 설거지론의 핵심과 멀리 있음.

 

-'난 능력있는 신여성이니까 나랑 만나면 설거지하는건 아님!' 이 어느 정도 맞는 말이기는 하지만...

 

1) 일을 결코 그만두지 않고 부양의무를 '동등하게' 질 지는 아무도 모름. 여자들이 대체적으로 남자들보다 소득도 적고, 자기 스스로에 대한 소비(명품가방, 친정에 갖다주기, 여행, FLEX) 성향이 높은 건 경험적으로 알려져 있음.

 

2) 일을 안 그만두고 계속 하는데 가져오는 돈 이상의 희생을 남편에게 요구할수도 있음. 워커홀릭 아내때문에 가정생활이 파탄으로 가는 케이스도 심심찮게 보고되는 건 다들 알 것임. 이러나 저러나 결혼해서 서로를 위해 자신을 내려놓는게 아니라 나를 위해 너를 내려놓을걸 요구하는 건 매한가지

 

결국 정량적으로 남성이 손해볼 '확률' 이 높은데 그걸 무마시켜주던 비정량적 '순결'을 덜어내고 문란함을 끼얹으면 설거지론이 나오는것임.

 

 

썸·연애: 설거지론 이해하기: 무게추가 뒤바뀌다

설거지론은 아직까지 가부장제와 포스트-가부장제의 과도기적 상황에 있는 한국의 맥락에서 해석해야함.가부장제에서 남성은 여성과 자식들을 부양하는 가장의 역할을 맡으면서 권위를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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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와... 야붕이들이 하면 걍 어그로용 설거지론인데... 배우신 분아 하니까 가부장 - 포스트 가부장 전환기의 사회 모순에 대한 통찰이네

 

오늘 이 주제에 대해 생각해보면서 저랑 생각한게 가장 비슷한 글인듯하네요 과도기 세태의 핵심을 잘 찌르셨네요 수박겉핥기만 하는 글들이 아쉬웠는데..

 

편향되지 않고 감정없이 담담하게 현실을 고찰한 좋은 글이라고 생각함

 

 

 

설거지론 커뮤니티 반응

- 이제 연애 시작한지 2달되었는데 요 며칠 핫한 설거지론 보면서 마음이 착잡하네. 여자친구는 나보다 5살 어리고 예뻐. 난 흔히 말하는 잘생기지 않은 능력남이고. (전문직은 아니지만 30대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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