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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의 사진들은 20년 전 당시의 혼란스러웠던 몇 달을 담은 것이다.

 

1991년 모스크바의 거리에서 한 여인이 쓰러져있는 소련의 낫과 망치모양의 조형물위에 가방을 올려놓고 있다.

 

1990년 1월 10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 시내에서 리투아니아인들이 자신들의 국기를 흔들며

자국의 독립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1990년 초에 반 소련 개혁운동인 사유디스 민족운동자들이 리투아니아 소비에트 연방 최고의원 선거에서 승리하였다.

그리고 그 해 3월 11일에 의회는 리투아니아의 독립을 회복시켰다.

당시 발트해 지방의 연방 공화국들은 독립을 위한 투쟁의 최전선에 있었고

리투아니아는 소련으로부터 공식적인 독립을 선언한 최초의 국가이다.

 

1990년 1월 11일, 리투아니아 빌뉴스를 방문한 소련 대통령 고르바초프(사진 중앙)가 현지 주민들과 담화 중인 사진.

고르바초프는 리투아니아 공산당에게 연방으로부터의 분리 결정을 취소하고

연방으로부터의 완전한 독립 또한 늦춰달라고 요구했다.

 

1990년 1월 22일, 아제르바이잔 공화국의 간자 시 인근 도로에서 도시에 진입하려는 소련군의 전차를 몸으로 가로막는 군중들.

연방 내 민족운동을 억누르기 위해 파견된 군사들은 무력저항 혹은 평화적인 저항과 맞닥뜨렸었다.

 

1990년 4월 27일, 빌뉴스의 중심지에 위치한 상점에서 시민들이 찻잔을 사고 있다.

리투아니아의 독립운동을 저지하기위해 취해진 연방의 경제 봉쇄정책에도 불구하고,

경제 봉쇄 열흘이 지난 리투아니아의 상점에선 식료품을 비롯한 기타 상품의 공급이 원활히 진행되고 있었다.

 

1990년 2월 15일, 타지키스탄 공화국의 수도 두샨베에 위치한 공산당 본부 앞에서 소련내무군이 설치한 저지선과

마주한 현지 주민들. 소련당국은 민족운동의 저지를 위해 해당 도시에 계엄령을 선포하였다.

 

1991년 1월 20일, 약 10만명의 집회참가자들이 모스크바 크렘린 궁으로 시위행진을 하고 있다.

시위대는 독립조짐을 보이는 리투아니아 정부를 군사적으로 단속하려는 고르바초프 대통령에 대해 사임을 요구했다.

 

1991년 3월 27일, 한산한 붉은 광장을 지키고 있는 소련경찰들.

이곳은 옐친 지지자들의 대규모 집회가 계획되어 사전에 봉쇄되었다.

 

1991년 1월 17일, 빌뉴스의 리투아니아 의회 앞에 소련군대의 포격에 대비하여 세워진 장벽 앞에 반 소련 낙서가 붙어있다.

 

1991년 1월 13일, 리투아니아 국영 라디오, 텔레비전 방송국을 공격하는 소련군의 전차 앞에 뛰어든 한 남자.

소련군은 비무장 상태의 시민들에 대해 발포했고 이 과정에서13명의 시민이 사망하고 100명 이상이 부상당했다.

 

1991년 3월 10일, 고르바초프 대통령과 그의 측근들의 퇴진을 요구하며 크렘린 궁 옆의 마네쥐나야 광장에 운집한

수 십만명의 시위대. 당시 시위대의 규모는 약 50만 명으로 추산되며

이 수치는 공산정권이 세워진 이래73년 만에 열린 최대 규모의 반정부 집회였다.

 

1991년 8월 19일, 크렘린 궁전과 성 바실리 성당입구인 스빠스키 문 주변에 세워진 소련 전차들.

공산체제를 복원하려던 일군의 쿠데타 세력은 대통령 고르바초프를 감금하였고

이를 강력히 규탄한 연방 소속의 러시아 공화국 지도자 보리스 옐친을 잡기위해

그가 있는 모스크바의 관저에 전차를 보냈다.

 

8월 19일 쿠데타의 주역들. 좌측부터 소련시절 내무부 장관이었던 보리스 푸고, 부통령 겐나디 야나예프,

소련 국방 위원회 초대 부통령을 맡았던 올렉 바클라노프.

이 사람들은 고르바초프의 개혁체제에 대항해 일으킨 쿠데타를 지휘하며

그들 스스로 자칭‘국가 비상사태 위원회’라 칭한 자들이다.

 

1991년 8월 19일, 모스크바 붉은 광장 근처에서 장갑차 주변에 몰려든 군중들.

일부 시민들은 장갑차 위로 뛰어올라가 앞으로 나아가는 것을 저지하고 있다.

쿠데타가 발생해 소련 대통령이 고르바초프에서 야나예프로 교체되었다는 발표와 동시에

쿠데타 군의 병력이 모스크바 곳곳에 배치되었다.

 

1991년 8월 19일, 보리스 옐친의 지지자들이 쿠데타 군의 공격에 대항해

옐친이 있는 러시아 연방 청사 주변에 장벽을 만들기 위해 커다란 쇠 파이프를 굴리고 있다.

 

쿠데타가 발생한 같은 날, 러시아 연방 청사 앞에 있는 장갑차 위에서 연설하는 보리스 옐친(좌)과

러시아 연방의 국기를 들고 있는 지지자들. 이 날 옐친은 쿠데타에 맞서 총파업을 요구하는 연설을 했다.

 

1991년 8월 19일, 모스크바, 쿠데타에 반발하는 한 민주주의 지지자가

러시아 연방 청사 앞에 있는 소련군 전차 위에 올라가서 탑승한 병사를 강제로 끌어내리고 있다.

이 날 모스크바와 레닌그라드의 시민들은 쿠데타군에 맞서 장벽을 쌓으라는 보리스 옐친의 요청에 응했다.

 

러시아 연방 청사 앞에서 보리스 옐친은 구체제 복원을 외치는 쿠데타 주모자들에 대해

끝까지 대항할 것을 촉구하며 지지자들 앞에서 힘차게 주먹을 들어 올려 보이고 있다.

 

1991년 8월 20일, 한 시민이 모스크바 시가지로 이동 중인 소련병사를 저지하고 있다.

 

1991년 8월 20일, 모스크바의 러시아 대통령 관저 앞에서 시민들이 음악을 연주하며 한 병사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1991년 8월 21일, 쿠데타가 실패로 돌아가면서 모스크바 시내에 배치되었던 소련 기갑부대가 철수하였다.

철수 중인 전차 위에서 한 전차 조종수가 러시아 깃발을 흔들어 보이고 있다.

 

1991년 8월 22일, 강경파의 쿠데타가 실패했다는 소식을 듣고 축하하기 위해 연방 청사 앞에 모여든 사람들 중 일부.

 

1991년 8월, 쿠데타 세력이 완전히 철수한 직후에 모스크바에서 열린 축하행사와 폭력사태로 희생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의식.

 

1991년 8월 22일, 모스크바 루뱐스카야 광장에 모인 군중들이

KGB의 설립자 제르진스키의 동상이 쓰러지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다.

 

쿠데타 기간 동안 가택연금 상태에 놓여있던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의회에 돌아와 기자들의 질문에 응하고 있다.

 

1991년 9월 21일, 바쿠의 한 시민이 러시아 공산혁명의 지도자인 블라디미르 레닌의 초상화가 그려진 선전구호를

도끼로 쳐 내고 있다. 아제르바이잔은 1920년 소련에 의해 공산권 국가로 편입되었지만 1991년 독립을 위한 투표를 진행하였다.

 

1991년 9월 28일, 소련의 록 음악 매니아들이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록 콘서트에 참가한 모습.

약 50만 명의 사람들이 메탈리카, AC/DC, 판테라 등이 등장하고 소련에서 개최된

최대 규모의 서구권 록 콘서트를 보기위해 모였다.

이 콘서트는 8월에 발생했던 쿠데타에 대한 청년층의 저항정신에 대한 일종의 선물이라고 불렸다.

 

1991년 9월 1일, 리투아니아 수도 빌뉴스에서 한 소녀가 해체되어 쓰러져 있는 레닌의 동상 위에 앉아있다.

 

1991년 12월 1일, 모스크바에 위치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서 연방 탈퇴와

자국의 독립에 관한 국민투표에 참여하는 우크라이나인들.

 

1991년 12월 25일,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연방 대통령직 사임 연설을 시청하고 있는 모스크바 시민들.

고르바초프가 이끈 개혁은 소련에 자유를 주었지만 궁극적으로는 연방의 붕괴를 이끌었고

그가 대통령직에서 물러남에 따라 세상에서 가장 거대한 공산국가 또한 더 이상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1991년 12월 21일, 소련이 공식적인 해체를 맞이하기 직전의 마지막 모습 중 하나,

이 때까지는 소련의 깃발이 크램린 궁전 위에 날리고 있다.

저 깃발은 이듬해에 러시아 공화국의 깃발로 바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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