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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트판에 올라온 안나카레니나 스탭 폭로

 

논란이 되고 있는 갑질 여배우에 대하여

 

안녕하세요.
그동안 크고 작은 논란들을 눈팅으로 구경만 하다가 용기내서 목소리를 내주시는 스텝분들의 모습을 보고 많은 고민 끝에 이렇게 글을 올리게 되었습니다.


부디 저의 이 글이 공연계의 미래가 더욱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게 노력하고 계신 분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어 드릴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며칠 전 발표된 1세대 뮤지컬 배우님들의 성명문을 읽고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나라 뮤지컬의 살아있는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세 분의 진심 어린 안타까움과 앞으로 공연계를 위하여 말씀하신 각오는 깊은 울림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후 며칠 동안 포털과 공연 관련 커뮤니티에는 엄청난 파장과 관심이 쏟아지더라구요.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논점을 흐리는 말들로 이 일의 논점이 왜곡되는 것 같아 괴로웠고, 한때 뮤지컬 현업에 종사했던 사람으로서 예전의 안 좋았던 기억들이 트라우마처럼 떠올라 굉장히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저는 10여 년 동안 크고 작은 연극과 뮤지컬에서 스태프로 일해왔습니다. 그러던 중 특정년도에 제작된 라이선스 뮤지컬 제작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제작사와는 프리랜서 계약으로 (뮤지컬계에서는 제작사에 소속으로 일을 하거나 공연 하나를 맡아 프리 프로덕션부터 공연 종료(지방공연 포함)까지 프리랜서로 계약하는 경우가 있음) 일을 시작하게 되었고 차기 작품까지 같이 진행하자고 구두 협의 후 일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뮤지컬 산업이 많이 활성화되었다고는 하나 물가와 인건비 상승으로 인해 제작비는 계속 오르지만 제한된 기간과 정해져 있는 객석 수로 인해 티켓 가격을 올리는 방법 밖에는 제작사 역시 수익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함부로 티켓 가격을 마구 올릴 수는 없기에 뮤지컬의 성공 여부는 오직 캐스팅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무엇보다 국내에서 한 번도 공연된 적이 없었던 초연 공연일 경우 더욱 어떤 스타가 나오느냐에 따라 공연의 성패 여부가 결정됩니다. 따라서 초연 뮤지컬을 제작하는 제작사에서 제일 신경 썼던 부분은 캐스팅이었습니다.

당시 뮤지컬계에 티켓 파워가 있는 남자배우는 여자 배우에 비해 상대적으로 숫자가 많지만 여자 배우의 경우 그렇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여자 배우가 주인공인 저희 작품에서는 티켓파워가 있는 배우를 캐스팅하는 일이 무엇보다도 중요한 일이었습니다.

 

 

결국 제작사 대표가 직접 나서서 수차례의 미팅을 통해 주연급 배우의 캐스팅을 진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해당 배우는 오디션을 보지 않았고, 콜을 받아 작품의 참여 여부를 결정했으며 그동안 공연했던 영상 클립을 해외 크리에이터들에게 보내 확인받는 정도였습니다.

(무엇보다 작품의 흥행 여부를 결정하는 주연배우가 정식 오디션 대신 캐스팅 콜을 받는 과정은 비단 뮤지컬뿐만 아니라 방송과 영화 등 업계에서 흔히 있는 일이니 이 과정은 저 역시 전혀 문제가 되는 일이라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가 말씀 드리고 싶은 것은 저런 과정에 대한 부분이 아닌 작품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부분입니다. 티켓파워가 있는 것과 별도로 공연의 준비과정, 진행과정 중에 배우로서 보여준 자세에 대해서는 별도의 평가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1. 배우가 본인과 직접 대면해 연기해야 하는 배우들의 캐스팅에 관여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배우의 영역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뮤지컬은 혼자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 많은 배우들이 합을 맞춰 한 달이 넘는 시간동안 살을 부대끼며 연습을 하고, 또 보통 한 달 반 이상의 시간을 무대에서 관객들과 만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혹시나 개인적인 사정으로 연기하기 힘든 배우가 있다면 미리 알려달라고 제작사에서 물어보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조연급까지 다양한 역할의 후보 배우들에 대해 본인이 모르는 배우거나 싫어하는 배우가 있으니 교체를 요청하거나 회차를 조정해달라는 경우는 드물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와 별개로 해외 크리에이터에게 승인받기 전의 캐스팅 관여 사실을 포함 그 일련의 과정을 제작사가 아닌 원작자가 알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그리고 모 평론가가 ‘라이선스 공연의 경우 배우를 뽑을 때 국내 제작진의 의도는 잘 반영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했지만 아무리 좋은 공연이라도 흥행이 되지 않으면 다음을 기약할 수 없기 때문에 (흥행이 되면 재연, 삼연 등 오랜 기간 동안 계속 공연을 할 수 있게 되어 해외 크리에이터들도 로열티를 지속적으로 받을 수 있습니다.) 한국 공연계를 잘 모르는 해외 크리에이터의 경우 국내 제작진과 제작사의 의견을 들으며 소통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2. 주연배우의 잦은 지각 때문에 생겼던 어려움에 대해서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주인공이 등장하는 씬은 당연히 많기 때문에, 주연배우가 지각할 경우 연습 진행이 어려운 것 또한 당연합니다. 그리고 이에 따르는 희생은 더블 캐스팅 배우들이 모두 떠안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됩니다. 프로필 촬영 때도 같은 경우로 몇 시간 지각해 배우들 포함 전 스탭들을 기다리게 만들고, 도착 후에는 미리 도착하셔서 대기하고 계시던 다른 배우님들의 촬영 순서였음에도 불구하고 본인이 먼저 촬영을 해서 참 당황스럽고 곤혹스러웠습니다.

 

3. 이 부분은 이미 많이 알려진 부분으로 알고 있습니다만, 공연 연습이 한 겨울에 진행된 적이 있었는데, 어떠한 연습실에서든 본인의 목이 건조해지면 안 된다고 히터를 못 틀게 하셨습니다.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니었지만, 함께 연습실을 사용하는 다른 댄서들의 경우, 고난도의 안무를 수행해야 하는 포지션이었기 때문에, 연습실이 따뜻하지 않으면 몸이 언 상태에서 연습을 하다가 크게 다칠 우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히터는 틀면 안 되니, 댄서들이 패딩을 입고 춤을 추라는 요구를 하셨는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이 그런 무리한 요구밖에 없었던 것인지 그때도 지금도 저는 납득이 가질 않습니다.

 

4. 스탭들은 무대에서 서는 배우의 컨디션을 위해 그 누구보다 최선의 노력을 합니다. 그렇기에, 무대의 청결을 유지하는 것도 스탭들이 하는 중요한 일 중 하나입니다. 스탭들이 무대 관리를 위해 많이 신경을 썼더라도, 배우에 따라서는 스탭들의 노력을 했어도 무대 관리가 미흡하다고 여길 수 있고, 그러니 청소를 다시 해 달라 요구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함께 무대에 서는 그 어떤 배우도 문제 제기를 한 적이 없었던 상황에서, 먼지가 많으니 물청소를 해 달라는 말을 꼭 스탭들이 인격적으로 모멸감이 들 정도로 소리를 치며 해야 하는 걸까요? 그렇게 소리를 치면서 청소를 요구했어야 할 만큼
스탭들이 무대 관리를 소홀히 해서 쾌적하지 못한 극장 컨디션을 만들어놨다면, 왜 함께 공연을 올리는 다른 배우들의 컴플레인은 단 한 번도 없었을까요?

 

5. 통상적으로 공연 홍보를 위해 기자님들을 극장이나 특정 장소에 모시고 프레스콜 (공연 오픈 전 일부 장면을 보여 주는 홍보 활동)을 진행합니다. 제작사에서 미리 프레스콜 당일 어떤 넘버를 누가 부르는지 계획서를 작성해 해당 배역 배우 및 소속사에게 전달하는데, 그 공연 때 프레스콜 전 진행된 쇼케이스와 프레스콜 때 각자 한 번씩 메인넘버를 부르기로 협의가 완료된 상황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쇼케이스 때 메인 넘버를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프레스콜 당일 공연의 메인 넘버를 본인에게 먼저 물어보지 않고 더블캐스팅 배우가 부르기로 정해졌다는 것이 배우의 입장에서 그렇게 크게 화내며 프레스콜 행사에도 불참할 만한 일이었는지 저는 아직도 의문이 듭니다.

 

6, 개인적으로는 해당 배우가 어떤 이유에서 저를 싫어했는지 정확히 모르겠습니다만, 제작사에 저와는 같이 일하지 못하겠다고 말씀을 하셨다고 들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공연이 종료되기 전 제 의지와 무관하게 일을 그만두게 되었고, 프리랜서로 일하던 저는 한 순간에 일자리를 잃게 되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 공연을 시작할 때 해당 제작사로부터 차기작도 함께 하기로 했던 이야기가 됐었지만, 차기작 또한 저는 함께 하지 못 했습니다.

 

그 이후 한동안 뮤지컬 공연 제작 일을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동안 열심히 일해 온 저의 커리어가 제가 아닌 다른 사람에 의해 무너진 참담한 기분이었고, 그래서 자존심도 상하고 너무 억울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가 겪었던 부조리했던 일들, 그리고 그때 느꼈던 억울함을 쉽사리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조용히 지내고 있다가, 얼마 전부터 시작된 뮤지컬계의 논란과 법적대응, 반박대응, 여러 배우님들의 성명서, 그리고 사과의 글을 보며, 도대체 이게 무슨 사과라는 것인가 싶었고, 마치 본인은 잘못이 하나도 없다는 식의 오만한 그의 태도에 화도 났고, 특히 차마 입에 담지도 못할 말들을 거침없이 쏟아내는 배우의 팬들을 보면서 참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용기 내어 이렇게 제 생각을 적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본인은 진심으로 떳떳한지 스스로의 양심에 자문해 보기를 바라며, 또한 본인으로 인해 상처 받고 괴로워했던 사람들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봤으면 합니다.

 

저는 근래의 상황이 최근 일어난 어떤 하나의 사건 때문에 벌어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아주 오랜 기간 차곡차곡 쌓인 것들이 결국 터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증거를 대라, 당당히 앞에 나와서 입장을 말하라 라고 말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생계가 걸린 업계에서 특히 개인이 아닌 팀으로 움직이는 파트의 사람이라면, 자신 혼자서 밝힌 생각 때문에 다른 모두가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에서는 앞장선다는 것은 참으로 힘든 일입니다. 그렇기에 여러 배우님들과 스텝들을 대표해 1세대 배우님들이 목소리를 내주셨던 것이고, 다른 후배 배우님들이 또한 동참하셨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소신 있는 행동들의 의미가 특정인을 겨냥한 저격이나 집단 따돌림으로 변질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마지막으로, 뮤지컬을 사랑하는 관객으로, 동시에 과거 업계에 몸담았던 사람으로서 부조리한 일에 대해 입을 연다는 것이 정말 어렵고 두려운 일임에도 불구하고, 용기내서 목소리를 내주신 많은 분들께 응원과 감사를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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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업계의 개선과 발전을 위해 글 올려주셔서 감사합니다. 성명서 발표하거나 동의한 배우 및 관계자분들께도 힘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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