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3년 단골고객
삼촌이 편의점 시작할 때부터 도왔는데 인테리어 과정도 봤고 초기 물품 채워 넣는 것도 내가 도움. 당연히 개점하고 알바도 내가 했지
그러다가 비가 오는 날이었는데 우산꽂이를 보통 문 앞에 놓거든? 근데 어떤 아줌마가 우산을 들고 들어오길래 꽂이에 넣어달라 했어
그러더니 자기 허리 앞에 있는데 시선을 절대로 내리지 않으면서 못 찾더라. 웃으면서 밑에 보세요 ^^했더니
"왜 이상한데 놔둬요. 내가 여기 편의점만 3년을 넘게 다닌 단골인데 항상 저기 있더니 알바 바뀐다고 함부로 놓지 마세요!"라더라
참고로 오픈한 지 3개월이 안되었던 시점이었음.
2. 쿨가이 노숙자
당시에는 편의점에서 소주 한 병이 1650원이었는데 빈병 가져오면 100원 돌려주는 시스템이었어
근데 야간에 노숙자가 들어오더니 1550원만 내고 내 눈앞에서 소주 한 병을 원샷하더라. 빈병 놓으면서 이러면 돈 딱 맞지? 하는데
불쾌한 감정 정말 하나도 없이 놀랍더라. 맘 같아선 하나 사주고 또 보고 싶었음. 쨌든 그 노숙자는 다른 가게 앞에 가서 자다가 새벽에 어디론가 감
3. 기묘한 아저씨
당연히 손님 없고 할 거 없으면 앉아서 폰 하고 있음. 근데 아저씨가 들어오더니 손님이 왔는데 그렇게 해도 되냐고 막 따지더라고
근데 오자말자 일어서서 인사도 했는데 문이라도 열어줬어야 했나?라는 생각이 들더라고. 근데 계속 화를 냄
자기가 내 사진을 찍어서 인터넷에 올릴 거라고 계속 화내는데 사실 그때 좀 많이 심심했던 차라 v ^.^ v 하면서 찍혀줬음 걍
아저씨가 뭘 원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많이 당황하면서 누그러지더라고.
근데 심심하기도 했고 잃을 것도 없어서 아저씨 폰 달라해서 아저씨랑 같이 나오게 셀카 모드로 10장 촬영하고 돌려줌
이쯤 되니 아저씨가 맥 빠진 표정으로 담부터 그러지 말라던데 지금까지도 뭘 원했던 건지 감도 안 온다
4. 동물 애호가
편의점에는 당연히 폐기가 남는다. 알바생들이 먹고 치운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기도 하지. 근데 그걸 달라던 아줌마가 있었음
들어오자마자 당당하게 내가 동물을 많이 키운다, 그러니깐 폐기식품이 있으면 좀 나눠달라 선언하더라고
너무 당당하니깐 처음엔 직원인지 알았음. 규정상 폐기를 외부로 반출할 수 없다고 하면서 거절하니깐 "사장이에요?"라며 묻더라고
근데 너 따위가 뭔데 거절하냐란 말투가 아니고 진짜로 내가 사장이냐고 묻길래 "알반데요?" 했는데 그러면 좀 달래
? 규정상 안된다니깐요? - "사장임?" 이거 한 5번 반복하더니 화내면서 나감.
5. 영연방 선교자
한 번씩 나한테 포교하러 오는 애들이 있었다. 근데 심심하면 그거 이야기나 들어주면서 시간 보내니 굳이 쫓아내지는 않았음
지들도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하니 포교하러 온 김에 마실 거하나 씩 사서 쉬고 가기도 했고.
근데 어느 날 나보고 지네 종교가 영국 연방의 인증을 받은 한국 유일한 종파라고 하던데, 문제는 내 전공에서 영연방(Common Wealth)을 다룬다는 거였음
지들도 교육받을 때 영연방이라고 들었겠지만 영국이 중심이 되어서 만든 단체라는 거 때문에 영국 연방이라고 잘못 기억한 거겠지
그래서 내가 확인차 영연방 말하시는 거죠? 성공회 계열이에요 그럼? 했더니 영국 연방 아세요?라는 대답을 시작으로 10분간 영연방의 개념을 다시 설명함
난 이 친구들이 잘못 배웠는지 알았는데 알고 보니 가르쳐준 놈이 영연방이 뭔지도 모르는 거더라
6. 쿨가이 스모커
담배 사러 와서 "에쎄 순 0.1미리"라고 말하면 한 번에 끝날걸 에쎄, 순, 0.1이라고 3번 더 물어봐줘야 하는 수줍은 사람들이 많음
가끔 "아무거나", "저거"라고 하는 사람도 있음. 그날도 손가락질도 아니고 턱을 까딱하면서 "저거"라는 사람이 왔고 정말 그쪽 방향의 아무거나 줬다
그러더니 계산하고 가더라. 근데 담배회사의 요구에 따라 생각보다 자주 담배 배치 구조가 바뀐다
그리고 그 사람은 항상 같은 방향으로 "저거"라며 까딱거리고 항상 다른 담배를 받아갔는데 정말 수줍은 사람으로 기억하는 중
7. 품격 있는 진상
새벽에는 손님이 정말 없지만 일단 오면 긴장해야 한다. 새벽 3~4시에 들어오는 사람이 일반적이지는 않으니깐
이 손님도 3시에 들어와서는 테이블에 앉아서 맥주랑 안주 가져오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더라. 딱 봐도 진상이라서 진압하러 갔는데 5만원 주면서 잔돈 너 가지고 빨리 가져다 달리더라.
그래서 적당한 트레이에 담아서 맥주 2병에 고급 육포 해서 8000 원컷 해서 가져다 드렸다.
물론 내가 맥주도 부어드리고 육포도 적당한 곳에 담아서 풀세팅함. 그러더니 앉아봐! 하면서 20분 정도 인생 교육해주시더라
맥주만 마시고 육포는 먹지도 않길래 육포 먹으면서 교육받는데 나름 괜찮더라고. 20분 뒤에 택시 잡아달라길래 콜택시 대령해드렸더니 고맙다 하고 가심
개인적으로 인생교육 유익했고 자주 오시면 좋겠더라. 처음에 진상으로 생각했던 내가 너무 부끄러웠던 날이었음
8. CD를 찾는 손님
매장 둘러보던 손님이 나보고 cd 어딨냐고 묻길래 설마 디스크를 찾지는 않을 테고 cd... 콘돔? 아 콘돔을 찾으시는구나 하면서 콘돔 갖다 줌
근데 손님이 기겁하면서 이거 말고 cd요! cd! 돈 나오는 기계!라고 하더라. 난생처음 CD기라는 명칭을 들어서 놀랬지만 ATM까지 안내해드림
나중에 검색해보니 ATM의 옛날 명칭이 CD기더라.
9. 노틀딱 리틀 코리안
주변에 요양병원이 있어서 고정 노인 손님이 꽤 있었음. 문제는 노인 손님 중에 발음이 뭉개져서 소통이 힘든 손님도 있었지
입이 쑥 들어가 있었으니 아마 틀니를 껴야 하는데 안 끼고 편의점에 온 거겠지만 한 문장에서 한 단어 정도만 이해할 정도로 발음이 안 좋았다
담배도 무슨 한라산이라고 존나 특이하고 팔리지도 않는 담배 폈는데 주문할 때 "XXX한라산 XX" 이렇게 들려서 해서 힘들었음
가끔 라이터 사갈 때마다 한라산 말고는 들리지가 않으니 수십 번을 되물어봤고 자기도 짜증 나는지 "시발 너 한국인 XXX?라고 욕하더라 욕은 잘 들림
첨에 걍 미안하다 하고 다시 물어보는데 계속 한국인 맞냐고 극딜 넣길래 귀찮아서 영어 쓰면서 진짜로 외국인인척함. 그러더니 조용히 가더라
10. 원어민
근처에 여중 여고가 있어서 원어민 교사 거나 원어민 강사같이 보이는 금발 백인 여자가 한 번씩 옴.
자기는 3리터짜리 재활용 봉투를 찾는데 설명할 자신이 없으니 걍 사진으로 보여주면서 "this, one" 이러더라고
사실 한국에 사는 놈이 한국말도 못 하냐고 뭐라 하고 싶지만 귀찮기도 하고 마침 영어도 되니 5리터가 제일 작은 거라고 친절히 설명해줌
이 년이 영어 할 수 있냐고 존나 좋아하면서 신기해하던데 아니 어차피 대학생 편돌이들은 그 정도 영어는 다 할 텐데 여중생만 가르쳤을 테니 이해는 함
그년이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평소 편의점에서 궁금했던 점 원 없이 물어보고 왕창 사가더라. 담부터도 사장 있을 때는 재활용 봉투만 사가는데 나있을 때는 존나 물어보면서 사가던데 친화력은 좋더라
별생각 없이 글 써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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