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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 출신인 집이 다 그런진 모르겠지만, 우리 집은. 특히 외가쪽은, 좀 무당이니 굿이니 하는걸 좀 믿는 쪽이었음.

 

엄마나 외가 친척들 보다는 주로 외할머니가 그런 미신같은걸 믿으시는 분이라, 거기에 따라서 그 아래로도 줄줄이 '뭐 그럴 수 있지'하는 느낌.

 

그래서 동네에 할머니랑 친하신 무당? 전 무당? 뭐라해야될지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런 늙은 무속인 분도 한 분 자주 만나러가고(왕씨인지 왕할매라 부름)

 

어려서부터 집 근처에 사시던 외할머니 덕이랄지 형님이랑 나랑 할머니 손잡고 찾아가서 '형님은 큰일 할 상이고, 어린놈은 기가 세서 큰일은 모르겠고 아무튼 평범하겐 안살겠네'뭐 그런 얘기도 종종 해주시고 사탕이나 먹으라며 꺼내주고 그러셨던 기억이 남.

 

여하, 집 근처에 외할머니가 지내셨고 맞벌이 하시던 부모님 대신에 초등학교 다니던 시절엔 할머니가 부모님 대신 집에서 밥도 해주시고 거의 같이 생활하다시피 했었음.

 

초등학교 3학년 때였고, 아마 새 학년이 시작되고 얼마 안됐던 때였음. 3월 중순? 쯤. 봄이긴 한데 아직 막 따듯하다 하긴 그런 애매한 계절. 반 바뀐지도 얼마 안됐고, 얼굴 익히고 말문 트인 애들이야 몇몇 있었지만 아직 막 어디서 약속 잡고 학원 마치고 모여서 손잡고 돌아가고 할 만큼 친해진 애는 없던 그런 시기.

 

당시에 피아노학원을 한창 다니고 있었을 때라, 새학기랑 맞물려서 피아노 학원을 마치고 나면 딱히 같이 돌아갈 친구도 없고 해서 학원 칭기들이랑 빠빠이 하고나면 집까지는 혼자 가야되는 상황이었음.

 

그 날도 역시나, 학원 끝내고 빨리 집가서 tv나 봐야지 하면서 호다닥 걸어가고있었을거임. 피아노학원이 있는 골목길을 빠져나와, 대로변을 좀 걷다보면 횡단보도와 지하도가 나란히 있는 건널목이 나오고 타이밍이 잘 맞아서 초록불이면 횡단보도를 건너고, 아니면 지하도를 가는.

 

당연히 운 좋게 횡단보도를 스트레이트로 건너는 일 보다야 지하도를 가게 되는 일이 많았고, 학원 끝나고 좀 어둑어둑해지는 시간이 으스스하다 하던 것도 원투데이지 그 시간대에 돌아다니게 된 것도 년 단위가 넘어가던 때라 역시나 빨간불인 횡단보도를 보고 별 생각 없이 지하도로 내려가는 계단에 발을 디뎠음.

 

최근에 무단횡단 사고가 자주 일어나더라 하니 조심하라는 선생님 말이나 갑자기 급하게 쳐놓은 게 확실해 보이는 주차고깔이나 뭐 그런게 한창 보이던 시기긴 한데, '난 선생님 말 잘들어서 무단횡단같은거 안하고 지하도로 잘 다니는데 알빠노' 하는 느낌. 아무튼 그렇게 운동화 신고 터벅터벅 계단을 내려가며, 지하도 특유의 어둑한 조명이 슬금슬금 가까이 다가오던 때였음.

 

 왜, 지하도로 내려가고있으면 경계선이라 해야되나 그런 게 있잖아. 계단 위로 하늘이 보이게 뻥 뚫려있는 지점을 지나치면, 천장이 생기는 그 지점.  해질녘이면 짙게 그림자 져서 뭔가 '여기부터 확실히 지하도임ㅇㅇ'하는 느낌으로 경계가 그어지는 그런 지점. 한 걸음. 또 한 걸음, 그렇게 두 발이 전부 그 경계선을 넘은 시점이었음.

 

소리가 울리더라도 신발 종류에 따라 울리는 소리가 다르잖아? 운동화는 터벅터벅 하고. 구두나 단화 같은건 또각또각 하고.

 

그런데, 내 귀에 들린건 분명 '또각또각'이었음.

 

처음엔 당연히 별 생각 없었지. '다른 사람이 있나보구나'하는 정도. 이상하게 소리가 가까운 건, 지하철 내리고 올라오던 사람이 이쪽으로 걸어오고있는 모양이구나 하는 정도로 가볍게 넘기고 열심히 계단을 내려갔음. 진짜 이상한걸 느낀 건, 계단을 다 내려가고 지하도의 풍경이 완전히 눈에 들어오는 시점이었음.

 

지하철을 타러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 근처에도, 맞은편 도로로 나있는 다른 출구 쪽에도. 지하도 어디에도, 사람 모습은 보이지 않았음.

 

갑자기 추워진 것 같은 기분에 발걸음을 멈췄더니 같이 멈춘 또각거리는 발걸음 소리. 주변을 둘러보아도 사람은 나 혼자 뿐. 정확하게 무슨 일인진 몰라도, 어린 나이에 그래도 '뭔가 큰일났다'하는 느낌만은 들었음. 멈췄던 다리를 조심스럽게 들어올리고, 빈틈이라도 노리듯 두다다다 달리기 시작했는데 '또가가가가가각'.

 

역시나 아무도 없지만, 내가 달리는 속도에 맞춰 누군가 달려오고 있었음. 단화같은걸 신고. 걍 그 상황 자체가 이해도 안되고 너무 무서워서, 지하도를 벗어나 집에 도착할 떄까지 10분 남짓을 그냥 미친듯이 달렸음.

 

어느순간 부터인가 발소리는 안들리고, 헐떡거리는 나한테 역시나 부모님 대신 집을 보고 계시던 할머니가 '무슨 일 있었나?'하면서 날 맞아주셨지만 안도감 보다는 어딘지 모르게 석연찮은 기분만 들었던 것 같음.

 

밤에 부모님이 돌아오시고 이 얘기를 했지만, '애가 새학기라 아직 긴장이 덜 풀렸나보내'하는 반응. 밤늦게까지 컴퓨터좀 그만 보고 일찍 푹 좀 자라며 핀잔이나 듣고,  뒷맛이 찝찝하긴 했어도 아직 부모님 말이 무조건 맞다 믿던 시기의 내가 할 수 있는 선택지라 해봐야 부모님 말데로 쓸데없는 생각 그만하고 잠이나 잘 자는 것 뿐이었음.

 

그렇게 하루.  또 하루. 삼일. 나흘. 시간은 흘러갔고, 그런 일이 다시 생기거나 하는 일은 없었음. 슬슬 나도 '진짜 어디가 아팠나?'하는 생각을 하며 그 일을 한 때의 헤프닝 정도로 잊어가던 때였음.

 

당시 일요일 저녁마다 개그콘서트를 했던 걸 다들 기억하려나 모르겠음. 아무튼 분명 개콘을 보고있었을 때니까, 일요일이었을거임. 할머니는 해 떨어지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시고, 부모님이랑 형은 다같이 마트에 장보러. 나는 혼자서 개콘 보고싶다고 땡깡부려서 집에 혼자 남아있게 됐었음.

 

개콘이 거의 끝나갈 때 쯤이었으니 10시? 11시? 아무튼 꽤 어둑어둑해지던 때. 딱히 내 취향이 아니다 하는 코너가 나와서 tv가 있는 큰방을 빠져나와 불 다 꺼져있는 거실을 거쳐 화장실로 가던 때였음.

 

지하도 때의 기억의 플래시백. 날씨를 감안해도. 막 이불에서 빠져나온 상태를 감안해도 너무너무 춥다는 느낌. 뒤따라오던 발소리를 들을 때 들었던, 무언가 잘못됐다는 기분. 그런데도 뭔가 몸이 내 통제를 벗어나, 제멋대로 관성에 따라 움직이는 어색한 감각.

 

내 의지였는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가 개입한 건지 아무튼 그런 좆된 듯한 기분 속에서 내 손은 화장실의 불을 켜고 화장실의 문을 열었음.

 

그리고, 새하얀 원피스에 긴 생머리를 가지런히 빗어둔 채 눈을 가릴 정도로 길게 늘어뜨려놓은 여자애랑 마주보게됨.

 

나보다 키가 살짝 컸나. 원피스랑 깔맞춤이라도 한 건지 새하얀 단화를 신고있었던가. 아무튼 머리카락에 가려져 얼굴이 보인 것도 아니고 디테일하게 무언가를 살펴볼 만큼 시간이 길게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사람의 촉이라는 게 있잖아. 몇 번이고 말했던 무언가 크게 잘못된 것 같다는 촉.

 

그게 어느 때보다 강하게 들어왔음. 눈을 깜빡거릴 생각도 못하고, 흡-하며 숨도 멈춘 채 그리 길지 않은 시간. 아마 끽 해봐야 2~3초? 정도 그 여자애랑 눈을 마주치고 있었던 것 같음. 나도 모르게 눈을 깜빡거렸을 땐, 이미 여자애의 모습은 사라진 뒤였음. 또각거리는 발걸음 소리가 멀찍이서 들려왔고.

 

당연히 집에 돌아온 부모님한테 울고불고 하며 이런 일이 있었다 말했지만, 믿어주는 사람은 없었음. 지금 생각해보면, 믿는 티도 내면 안됐던 걸지도 모르겠다 싶긴 함.

 

그 뒤로 딱히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나진 않았음. 왕할매가 맨날 찾아갈 때마다 말했던 것처럼 '기가 세다'하던 거랑 연관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 여자애랑 마주친 뒤로 화가 생긴 사람은 우리 집에 혼자서 가장 긴 시간을 보내며 그다지 몸이 건강하다고 말하긴 힘들었던 외할머니셨음.

 

잘 떄마다 누가 밟고있는 것마냥 가슴이 답답하다, 밤에 기침이 멈추질 않는다, 왜이렇게 몸이 으슬으슬 춥냐. 등등.

 

나날이 증상이 심해지셔서 종합검진도 몇 번이나 받아봤지만, 매번 이상무. 기어코 거동도 힘들어지셔서 외가 친척들이 다같이 모여서 어디 요양병원이라도 들어가 계셔야되는 것 아니냐 하던 때에 할머니가 마지막이라는 듯 제발 한 번만 가봐라 한 곳이 왕할매 덱.

 

진짜 사비 들여서 굿하고 부적 쓰고 하시던 분들은 아니셔서 탐탁찮으시긴 하셨던 것 같지만, 부모님은 결국 왕할머니를 찾아갔음. 부적 몇 장을 써주시고는 나를 보면서 '절대로 할머니 집 근처로 가지 마라. 너히는 딴말 하지 말고 할매 몰래 이거 베개랑 장롱에 숨겨놓고'정도의 내용을 첫 마디는 나를 보며. 두 번째 마디는 부모님을 보면서 욕설과 방언 섞인 말투로 말씀하셨음. 괜찮아졌다 싶으면 또 외할머니 몰래 부적을 꺼내다 태워버리라고도 하시고.

 

그 뒤로는, 뭐 부적이 효과가 있었던 건지 그냥 자연치유인지 할머니는 멀쩡해지시고 이듬해 쯤 이사를 가버려서 이 일이랑 관련된 무언가가 일어나는 일은 없었음.

 

근데 지금도 부모님한테 이때 얘기 꺼내면 그런 얘기 하는거 아니라면서 꿀밤 때리시는 거 보면 아마 내가 모르는 무언가가 더 있었을 것 같긴 한데

 

왕할매도 돌아가시고 옛날에 살던 집도 지금은 주인이 2번쯤 바뀐 뒤라고 들었으니 이제는 알 길이 없소이다네

 

 

 

나도 자다가 잠결에 눈살짝 떠서 벽시계 쪽 보니까 내 머리맡에 여자귀신 있더라

그래서 본능적으로 팔뻣어서 치마들줘서 팬티 봄

하얀 소복속에 딸기무늬 있는 핑크 팬티 더라

귀신도 당황했는지 눈깜짝 하니까 순식간에 사라지던데... 그누나 한번만 더 나타줬으면 좋겠다

 

이건 좀 신빙성있노

딸기100% 봤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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